2024. 11. 22 진리와 성결을 지켜 왕적 통치권을 얻는 교회 (계 2: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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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8회 작성일 24-11-28 10:26본문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이기에 교회의 승리는 성도의 승리이다.
교회가 세상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듯이 성도들도 개인의 삶속에서 세상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이런 갈등과 투쟁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분명한 성경적 답을 주어야 한다.
오늘날 세상 속에 있는 교회를 바라보시며 예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교회는 나름대로 예수님의 뜻을 해석하고 적용하지만 중요한 것은 진정한 예수님의 뜻이다.
예수님의 뜻은 우리의 구주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가운데 세워진 교회가 사단이 다스리는 세상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알게 한다.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있는 교회가 되려면 신앙적 삶의 동기와 결과인 행위에 있어 점점 성숙해져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칭찬을 직역하면 ‘나는 내 일들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을 알고 또 나중 처음 일들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이다.
‘행위’라는 단어는 ‘일들’로 번역되어진다.
두아디라 교회는 ‘일들’이 있는 교회로 여러 가지 실천들이 있는 교회라는 말이다. 사랑, 믿음, 섬김, 인내가 그 일들이다.
사랑과 믿음은 그 일들의 동기이고 섬김과 인내는 그 일들의 결과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과시나 자랑의 동기가 아닌 사랑과 믿음에서 말씀을 실천했다.
교회와 성도의 실천은 사랑과 믿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사랑과 믿음에서 시작되지 않으면 결코 섬김과 인내의 결과를 맺을 수 없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과 섬김에 있어서 모두 칭찬받았다.
제자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믿음과 사랑으로 제자도의 가장 중요한 모습인 봉사와 인내를 실천한 모범적이 교회였다.
두아디라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사랑과 믿음에서 시작된 봉사와 인내의 행위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풍성해졌다는 것이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와 정반대였습니다.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는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사랑과 믿음, 섬김과 인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풍성해지고 나아져야 한다.
교회와 성도들 모두가 시간이 흘러갈수록 믿음이 견고해지며 사랑이 깊어지고 섬김과 인내에 풍성해지며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나아지기를 기도한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18-19)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있는 교회가 되려면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교회 안에 이세벨이라는 거짓 여선지자를 용납하고 그의 유혹에 빠져 성도들이 타락했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미혹당했을 뿐 아니라 그녀와 행음하기까지 했습니다.
요즈음도 교회 안에서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당하는 경우를 본다.
성도를 미혹하는 사람이 영적인 것처럼 보이고 게다가 외모라든가 배경이라든가가 화려하면 성도들은 금방 미혹이 된다.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이들은 자기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인간적 배경을 사용한다.
이세벨이라는 여인의 문제는 자신의 음행을 합리화하려고 교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당시 두아디라에는 여러 길드라는 상공업 조직들이 있었고 염색 길드와 봉제 길드가 가장 중요한 길드였다고 한다.
옷감장사 루디아도 염색 길드에 속해있었다.
두아디라 교회는 빌립보에서 복음을 영접한 루디아가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세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는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행16;14)
길드들은 자신의 수호신을 섬기는 제사를 드렸으며 그 제사는 부도덕한 행위와도 연결이 되었다.
생업에 종사하는 것 자체가 우상숭배를 하고 행음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직장 생활하려면 그 직장의 여러 세속적 문화에 동화되어야 하는 것과도 같다.
영적인 것처럼 보여진 이세벨의 메시지는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세속화된 성도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영적으로 매우 민감하게 깨어있어야 하고 말씀과 삶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과 믿음으로 봉사와 인내의 본이 되었던 교회가 뿌리 채 흔들릴 수 있다.
거룩한 진리와 삶으로 거짓을 분별하는 교회와 성도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20-23)
주님!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믿음이 견고해지고 사랑이 충만하게 하시며 진리와 삶으로 거짓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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