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 주님이 기대하시는 열매, 정결한 교회와 순전한 신앙 (막 11:11-19)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22회 작성일 24-02-05 14:15

본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던 이유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기성 종교와 기성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을 살리는 생명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걸지 않았다.

생명을 살리려면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버릴 만큼의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생명을 버리는 것이 진정한 생명력이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버려서 남을 살리고자 하셨기에 생명력이 있다.

예수님은 사람 살리는 일에 목숨을 바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두 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한 가지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나무를 보시고 나무를 죽게 하신 것이고 또 한가지는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이들을 모두 내쫓고 그 좌판을 둘러엎으신 것이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서 무언가를 얻으려다가 열매 없는 것을 보시고 그 무화과를 저주하신 것은 무화과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미 다음 행보 곧 예루살렘에서 벌어질 성전 정화를 예견하셨다.

공생애 기간 중 몇 번 다녀가시면서 예루살렘의 종교 상황을 보신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들어서셨을 때 

더 이상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는 종교를 두고 보실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을 살려 내지 못하고 또 살려 낼 수도 없는 생명을 잃어버린 종교였고 종교지도자들, 곧 열매 맺지 못하는 신앙이다.

예수님은 무화과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시는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가 죽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실 때 그 필요를 채울 수 없는 껍데기 종교는 곧 죽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수 천 년 간 뿔뿔이 흩어지고 성전도 모두 무너져 버릴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화과를 향한 주님의 저주는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마저도 십자가에 죽일 정도로 썩어버린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도 예수님 보시기에 열매맺지 못하는 잎만 무성한 믿음일 수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화려한 건물을 자랑하고 잘 짜여진 예배를 자랑한다.

헤롯이 40년이 넘게 지은 화려한 성전을 자랑하고 거기서 행해지는 제사를 자랑하듯. 화려한 제사장의 의복들

성경에 통달한 듯한 바리새인들이 지식을 자랑하듯 할 수 있다.

예수님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썩은 시체가 들어있는 무덤을 그럴싸하게 장식한 회칠한 무덤일 뿐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들이라 하셨다.

잎만 무성한 신앙은 사람을 종교적으로 만들지는 모르지만 사람을 살리는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 나의 신앙은 어떤가 깊이 돌아본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같지는 않은가. 진정으로 생명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나의 신앙과 교회 공동체의 신앙이 주님이 열매를 요구하실 때 바로 내어드릴 수 있는 살아있는 신앙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서 본 것은 이방인의 뜰을 가득 채운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이다.

이방인의 뜰은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했을 때 그들이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한계선이다.

성소에까지 들어 갈 수 없었던 그들은 거기서라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은혜를 구해야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뜰을 장사꾼의 장마당으로 바꾸었다.

이방인의 예배 처소를 빼앗은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강도짓이다.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의 구원이나 예배는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자기들만이 구원받을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에 도취되어 유대인이면 자동으로 구원을 얻는 것처럼 착각하고 

이방인보다도 더 세속화되어 성전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제사장들과 결탁해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다.

예수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다.

성전은 그 어떤 경우라도 구원받은 백성의 예배 처소로 쓰여져야지 세속의 목적으로 쓰여져서는 안 된다.

오늘날도 신앙을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정치적 이득, 경제적 이득, 사회적 이득과 같은 세속적 이득을 취하려는 모든 행위를 버려야 한다.

교회는 세속으로 물든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거룩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교회를 세속적 목적으로 이용하려한다면 그에게는 아무런 영적 소망도 없다.

세속적 신앙, 형식적 신앙은 절대로 나를 구원해주지 못한다

성소에, 지성소에, 유대인의 뜰에, 거룩한 척하고 서 있어도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

이방인의 뜰일지언정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기도자, 예배자로 서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만이 구원의 소망이 있다.

거룩한 신앙을 지키려면 잎만 무성한 신앙에 대한 철저한 분노와 거절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성전 장사꾼들을 향하여 분노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거룩한 분노였다.

거룩을 상실함에 대한 분노는 하나님의 분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분노에 함께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세속화되고 형식화되어가는 교회 그리고 지도자, 심지어 나 자신에게 대해서도 분노해야한다.

예수님처럼 채찍을 들어 내쫓아야 한다.

교회에서 내쫓고 내 마음의 성전에서 내쫓아야 한다.

교회가 거룩을 회복하고 성도가 거룩을 회복해야 만민이 기도하러 나올 수 있다.

나의 잘못으로 만민이 기도하러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둘러엎어야 한다.

내가 강도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돌아본다.

나와 교회 공동체가 사람을 살리는 거룩한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진정으로 열매 맺는 신앙, 살아있는 신앙, 살리는 신앙 가지게 하시고 언제나 제 자신이 거룩한 성전,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