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일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내부의 분열 (삿 1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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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63회 작성일 21-09-0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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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공동체는 고난과 영광을 함께해야 한다.

고난은 피하고 영광을 얻으려는 태도는 공동체를 해하는 잘못된 태도이다.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에브라임 지파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기드온 때에도 자신들을 전쟁에 부르지 않았다며 기드온에게 항의하고 대적하려다

기드온의 겸손과 지혜로 돌아갔었다.

그들은 다시 입다에게도 동일하게 항의하며 무시하고 대적하려 한다.

입다는 기드온과 달랐다.

암몬과 전쟁을 벌일 때 무관심하다가 이제 와서 동족을 향해 항의하고 대적하는 그들의 태도에 굴복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

결국은 동족 간의 전쟁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리석은 교만으로 반복해서 트집을 잡은 에브라임도 옳지 않지만 이에 맞서 동족 간의 살륙을 저지른 입다도 옳지 않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지파들 안에 신앙공동체 의식이 없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1-3)


모세는 요단 동편에 머무르려는 지파에게 서편 정복 전쟁에 함께함을 전제로 동편 거주를 허락했었다.

신앙공동체는 고난과 기쁨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신앙공동체 의식은 가나안에 들어와서 사라지고 말았다.

요단 동서의 지파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을 치르며 입다는 도망하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을 발음의 차이로 색출하여 살륙한다.

민수기의 인구 조사를 근거하면(32500명) 에브라임의 거의 대부분 성인 남자가 동족과의 싸움에서 전사를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어찌 입다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뜻이었겠는가

그의 분노와 욕망의 결과일 뿐이다.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5-6)


오늘날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얼마나 하나됨의 의식을 가지고 함께 하고 있는가를 돌아볼 때 심히 부끄럽기만 하다.

개인주의, 개교회주의에 지배당해서 공동체성을 잃어버렸다.

입다가 에브라임과 살륙전쟁을 치르듯 그렇게 서로 싸우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교회의 공동체성이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알리는 증거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공동체성의 상실은 세상으로 하여금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고 있다.

내 자신부터 철저히 회개하고 교회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더욱 겸손하게 사랑을 실천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고난과 영광을 함께 하는 신실한 신앙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주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와 모든 교회가 한 몸, 신앙공동체가 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신앙공동체가 함께 고난을 겪으며 함께 영광을 얻게 하옵소서.

이 시대에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다시금 회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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