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6 고통 속의 탄식, 죽음의 세계를 동경함 (욥 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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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87회 작성일 21-10-0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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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공존하는 인간의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 가운데서 누리는 평안과 행복으로 의미가 있다.

더 이상의 평안이나 행복을 기대할 수 없는 삶이란 살아있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욥은 자신이 마주한 끝을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자가 존재할 세상에서의 삶을 동경한다.

거기에는 이 세상의 고통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11-16)

 

현실의 고통은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한다.

신앙은 그 고통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감당할 시험 밖에는 허락하시지 않는다고 하시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으면 생명을 주셔서 살게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결코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실존을 부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속에서 겪었던 고난들도 당시에는 너무도 견뎌내기 힘들었지만 주님의 은혜로 지나고 나면 모두가 주님이 주신 한계 내의 시련들이었고 

또한 주님께서 피할 길을 주셨던 어려움들이었다.

당시 그 시련들을 대했던 태도들을 지금까지고 기억하고 있다.

어느 때에는 신앙으로 극복하려고 몸부림치기도 했고 어느 때에는 불신자와 같이 행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않는 이들처럼 행동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고 회개가 저절로 나온다.

나와 공동체에 시련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겪어야할 시련들이 온다면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극심한 고통은 현실과 죽음의 세계를 혼돈하게 한다.

욥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죽음의 세계를 동경한다.

특히 욥은 하나님에게 붙들린 자가 겪을 이 고통, 또한 고통을 주시기 위해서 빛된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어떤 고통보다도 내가 믿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다.

성장할 때 부모이나 선생님께 이해할 수 없는 야단을 맞을 때가 있었다

꾸지람이나 회초리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내가 납득하고 인정할 잘못에 대한 꾸지람은 그냥 혼나고 끝이 난다.

그러나 납득할 수 없는 꾸지람은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욥에게는 이것이 가장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20-26)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시련을 겪을 때의 그 아픈 마음을 너무도 잘 이해한다.

이유라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하나님의 침묵으로 고통은 배가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실존과 자비를 부정하라 유혹한다.

하지만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을 때 주님은 시련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혹 깨닫지는 못해도 그 시련을 극복할 은혜를 주신다.

정말 밀물처럼 다가왔던 시련이 썰물과 같이 빠져나간다.

그래서 더욱 주님을 붙든다.

내가 모두를 이해하지 못하고 납득할 수 없어도 주님은 거기에 변함없이 계신다.

그 주님을 놓치지 않기를 기도한다.

 

주님!

저를 이 세상에 있게하신 의미를 깨달으며 살게 하옵소서.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시련을 겪는다 해도 결코 주님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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