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4 고난이 악인의 운명이라는 섣부른 단언 (욥 1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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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32회 작성일 21-11-0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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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벗어난 논쟁은 이제 욥에 대한 확정된 전제와 이를 통한 저주로 향한다.

분명 친구들은 논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욥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그가 말하는 이야기의 의미와 과정을 깊이 수용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욥을 설득하고 자기들의 뜻을 관철하며 나가서 욥을 굴복시키고자 하는 마음만 남아있다.

욥과 친구들의 논쟁을 듣고 있는 빌닷은 자신의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다.

친구들을 향한 욥의 이야기들 곧 재난을 주는 위로자(16:2)’ ‘조롱하는 자(17:2)’ ‘눈먼 우매자(17:4)’ 와 같은 말들을 듣고는 

이제 더 이상 욥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욥을 죄인으로 확정하여 낙인찍는다.

그는 욥의 죄를 살피려하지도 않으며 죄인이 받을 고난과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퍼붓기 시작한다.

어떤 마음으로 욥을 찾아왔든지, 처음에는 빌닷이 어떤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든지간에 이제는 욥이 이런 저주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1-7)

 

곤경에 처한 자들과의 대화는 늘 쉽지 않다.

과정이 어떠하든지 그는 상황에 몰입되어 있고 자기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사람들과의 대화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화를 하고 상담하는 과정에 자신도 모르게 그의 감정이나 상황에 휩쓸릴 때가 있다.

그래서 대화의 목적도 잃어버리고 내 자신이 대화의 중심이 되어 버릴 때가 있다.

무언가를 가르치고 권고하고 비판하고 지도하려 든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화의 상대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나도 모르게 그를 정죄하고 비난하기도 하며 어느 때에는 분노하기도 한다.

특히 나의 생각이나 주장이 상대방의 문제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진단을 내리고 말하는 것이라면 더욱 상대방을 힘들게 한다.

그럴 경우는 대화는 더 이상 대화가 되지 못한다.

그 대화와 권면은 오히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는 죄가 되며 그에게도 큰 상처를 준다.

빌닷이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는 이야기들이 욥에게 과연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죄인이 어떤 벌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강조와 나열로 욥을 설복시킬 수 있을까?

 

이는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으며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그의 힘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밑으로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로는 그의 가지가 시들 것이며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8-21)

 

빌닷이 말하는 죄인이 당할 화는 욥을 향해 퍼붓는 저주의 수준이다.

목적을 잃은 자의 권면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 되어있는지를 알 수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특히 권면이나 위로를 할 때 가장 금해야 할 것이 바로 내 중심적인 생각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 감정에 휩싸이고 상황에 휩싸이게 되어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잃고 목적을 잃어버릴 것이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이나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 세리장 삭개오등과 같은 자들과 대화를 할 때에도 예수님은 결코 감정이나 상황에 사로잡히시지 않고 

영혼구원의 목적에 합한 대화를 하셨다.

대화의 과정 가운데 내 자신이 감정과 상황에 휩쓸려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성령의 지혜를 구하고 진정 주님의 마음을 구한다.

 

주님!

누군가를 위한 대화를 하거나 권면 혹은 위로를 할 때 목적에 합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게 하옵소서.

결코 내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에 휩쓸려 이기적인 생각으로 상대방을 대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마음과 성령의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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