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30 고난당하는 이의 탄식을 무익하다 하지 마십시오 (욥 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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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77회 작성일 21-10-31 08:50본문
감정은 토론을 합리적으로 이끌지 않는다.
논쟁이나 토론은 사실과 논리에 근거해야 한다.
무엇보다 토론의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욥의 항변에 대해 다시금 엘리바스의 충고가 시작된다.
욥의 항변에 의해 마음이 상한 친구들, 특히 엘리바스는 욥의 논지를 깊이 살피기 전에 이미 상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자신들이 무지한 자라고 치부되는 듯하고 자신들의 말을 수긍하지 않는 욥에 대해 감정적으로 상하여 있다.
엘리바스는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리고 욥에게 문제의 해결을 위한 조언을 위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목적을 잃고 욥에게 분노하여 논쟁하고 있다.
엘리바스의 논쟁은 이미 논쟁이 아닌 분노에 가득한 책망으로 변했다.
엘리바스의 책망은 두 가지이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며 말로 하나님을 향해 죄를 짓고 있는 불신앙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과 사람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홀로 지혜롭다 여기는 교만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4-7)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네가 아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깨달은 것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8-10)
누군가와 상담이나 토론을 하는 과정 가운데 상대방의 말과 태도에 의해 나 역시도 감정이 상해서 논리적 설득이나 권면의 목적을 잃고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나도 마음이 상하여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적이 있다.
그러므로 토론을 할 때나 권면을 할 때 특히 상담을 할 때에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이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의 생각이 나와 같은가, 그의 태도가 내가 원하는 태도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를 얼마나 깊이 잘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 생각이 다르고 납득하지 못할 태도를 보여도 이해하고 수용하며 공감을 얻을 수가 있다.
예수님은 그렇게 제자들을 이해하셨고 사람들을 이해하셨다.
세리나 죄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생각하셨고 존중하셨다.
나 역시도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더욱 닮아가길 기도한다.
욥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엘리바스는 자기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결코 의로울 수 없음에도 욥이 교만하여 자기의 정결함과 의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하나님이 욥을 은밀하게 위로하시고 말씀하신다고 이야기 한다.
현재 욥이 당하는 고난과 아픔이 하나님의 은밀한 위로와 말씀인가?
엘리바스의 이런 말이야 말로 욥의 고난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이기적 사고와 판단의 산물이다.
그에게는 단지 욥을 설복시킬 생각 밖에는 없다.
‘하나님의 위로와 은밀하게 하시는 말씀이 네게 작은 것이냐 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 네 눈을 번뜩거리며 네 영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11-16)
욥기의 후반에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에게 노하시며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시고 욥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라고 하신다.
그래야 친구들을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아는 척했고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상황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지 내가 지식적으로 깨달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엘리바스와 같은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며 목적을 잃은 감정적인 권면이나 논쟁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기도한다.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대로 말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우매함을 범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언제든지 토론과 논쟁, 혹은 권면과 위로가 하나님의 목적과 마음에 부합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주님!
저의 위로와 권면, 가르침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앞세워 다가가지 않게 하옵소서.
그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진정 수용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하시고 그가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닫고 권면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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