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9 고난과 재난의 이유를 죄로만 보는 오류 (욥 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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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66회 작성일 21-10-1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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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의에 근거한 주장은 위로와 소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죄와 비판으로 이어진다.

엘리바스의 주장은 정죄를 넘어서서 저주의 선언에 가까워진다.

엘리바스는 욥의 분노와 시기가 욥 자신에게 화를 가져왔다고 지적하며 이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는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선언한다.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1-3)

 

자기중심적인 조언은 이토록 상대방을 아프게 한다.

사랑으로 시작한 조언이 정죄와 저주로 흘러가는 것은 자기 생각과 경험을 절대화하고 그것을 관철 시키려는 자기의 의 때문일 것이다.

말은 상담이고 조언이고 권면이지만 실은 자기주장의 관철이며 설복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조언을 했을까를 돌아본다.

긍휼함없이 나의 의에 근거해서 했던 조언이나 상담으로 상처를 입었을 이들을 생각하며 다시금 회개한다.

 

엘리바스는 이제 자기의 의를 주장하며 욥에게 조언한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내용이다.

내가 바로 의의 기준이다 그러니 너도 그리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높으심과 의로우심을 말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갈망을 주장한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자신의 교만을 헤아리지 못한다.

겸손과 갈망을 주장하는 그가 오히려 교만하다.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8-11)

 

정말로 '나라면'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많았다.

'나는 하나님을 너무 잘 알고 경외하고 바르게 행동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내가 하는대로 행해야 한다'

'나라면'은 정말 나일뿐이다.

그는 나와 같을 수 없으며 나와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나는 유일한 길도 아니고 유일한 해결책도 아니다.

나의 지식과 의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특별히 나의 의를 주장하려고 하나님을 이용하는 잘못된 태도를 회개하며 오직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길 기도한다.

 

주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로서 제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 않게 하시고 제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나라면'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면'을 먼저 생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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