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1 확증 편향성에 항상 주의하십시오 (욥 2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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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17회 작성일 21-11-11 09:06본문
감정적 논쟁의 끝은 모함이고 정죄이다.
욥의 반증에 친구들은 할 말을 잃었으며 엘리바스의 말은 이제 욥을 향한 모함과 정죄가 되었다.
설사 욥이 의롭다고 해도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니고 결코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악할 뿐임으로 욥이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였다 사람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끼쳐드릴 수 있느냐 아무리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그분께 아무런 유익을 끼쳐드릴 수가 없다
네가 올바르다고 하여 그것이 전능하신 분께 무슨 기쁨이 되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하다고 하여 그것이 그분께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1-3)
욥이 제기한 반론에 답을 할 수 없어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음을 주장하려면 엘리바스는 더 이상 욥의 행실에 대해 정죄하거나
모함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단지 욥이 온전히 의로운 삶을 살았다 하더라고 모둔가 죄인임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고 주장함에 그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본격적으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모함과 정죄를 시작한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책망과 심문이며 이는 욥의 죄악이 끝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경외한 것 때문에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판하시겠느냐 오히려 네 죄가 많고 네 죄악이 끝이 없으니 그러한 것이 아니냐
네가 까닭 없이 친족의 재산을 압류하고 옷을 빼앗아 헐벗게 하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물 한 모금도 주지 않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너는 권세를 이용하여 땅을 차지하고 지위를 이용하여 이 땅에서 거들먹거리며 살았다 너는 과부들을 빈 손으로 돌려보내고 고아들을 혹사하고 학대하였다
그러기에 이제 네가 온갖 올무에 걸려들고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어둠이 덮쳐서 네가 앞을 볼 수 없고 홍수가 너를 뒤덮는 것이다’(4-10)
욥을 향해 고난 가운데 자신의 죄를 살피라고 하던 엘리바스의 말은 이제 욥의 죄를 지어내서 단정하고 모함하고 정죄하는 것에 다다랐다.
엘리바스는 자기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모함하고 정죄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자신이 말한 것들이 오히려 올무가 되어 악하게 이끌고 있다.
말은 생각을 담아내고 행동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말에는 올바른 생각을 담아내야 하고 올바른 말에 책임을 지는 행위를 하도록 해야 한다.
종종 사람들이 말은 공중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여겨 가볍게 생각없이 말을 한다.
그러나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그 자체가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말로써 죄를 범하지 않도록 깊이 생각하고 말을 하며 바른 말을 담아내는 행동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방향과 목적과 가치를 잃은 엘리바스의 말은 이제 억지 주장이 되어 버렸다.
악인의 형통으로 반증한 욥에 대해서 정죄와 모함으로 답했던 엘리바스는 자기주장의 합리화를 위하여 어떻게든 악인이 받는 벌을 주장한다.
그래야 욥을 정죄한 자기를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욥을 위한 권면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주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욥의 말대로 거짓 위로인 것이다.
‘그들은 때가 되기도 전에 사로잡혀 갔고, 그 기초가 무너져서 강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좀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전능하신 분이라고 하여 우리에게 무슨 일을 더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들의 집에 좋은 것을 가득 채워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데도 악한 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악한 자가 형벌을 받을 때에 의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죄 없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비웃기를
과연 우리 원수는 전멸되고, 남은 재산은 불에 타서 없어졌다 할 것이다’(16-20)
말로써 남을 정죄하는 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합리화 하려는 자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거짓된 자기의 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미워하던 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시지도 않은 일들을 행했다고 정죄하고 말씀을 끌어다가 자기의 주장을 합리화했다.
오늘날 나 자신도 언제든 엘리바스나 예수님 당시의 종교인들과 같이 말하고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늘 나의 말을 살피고 나의 말이 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실에 근거하여 타인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주님!
제가 죄를 짓는 논쟁을 하거나 가담하지 않게 하옵소서.
또한 그런 나의 죄를 덮고 의를 주장하기 위하여 애쓰지 않게 하옵소서.
말로써 지은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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