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0 악인이 평안히 사는 세상, 신앙적 기대와 다른 현실 (욥 21: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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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72회 작성일 21-11-10 09:41본문
친구들의 논쟁으로 인한 욥의 차가운 변증이 계속된다.
이제는 욥도 원치 않는 냉철한 논리로 친구들을 대적한다.
차가운 논쟁은 사람을 위로할 수도 감동을 줄 수도 없다.
사람들의 착각은 논리적 설득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상대방의 잘못을 알고 대화를 한 적도 많이 있다.
당시에 분명한 사실은 내가 옳고 그는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에 나는 그를 설복시키고자 했다.
올바른 논리로 그의 잘못을 지적하면 그가 반드시 설복되어 회개하고 변화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였다.
오히려 마음이 상해서 관계가 나빠지고 교회를 떠난 경우들이 많았다
물론 시시비비는 분명하지만 그 과정이 잘못된 것이다.
마치 바리새인이 죄인을 다루듯 그렇게 한 것이다.
왜 예수님을 만나면 사람들이 스스로 회개하고 변화되었는데 당시의 종교인들은 그렇지 못했을까?
예수님은 긍휼함과 존중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했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차가운 율법적 논리로 대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목회자로서 내게 필요한 것은 지식적 논리가 아닌 주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
정말로 주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다.
욥은 계속해서 악인의 번성에 대해 논증한다.
본인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친구들에게 악인의 번성에 대해 설명해보라는 의도이다.
악인들에게는 오히려 재앙이 피해간다.
행악자들의 자식은 벌을 받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식이 아닌 그 자신이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자신에게 벌은 임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기력이 쇠하지 않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죽는다.
‘악한 자들의 등불이 꺼진 일이 있느냐 과연 그들에게 재앙이 닥친 일이 있느냐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그들을 고통에 빠지게 하신 적이 있느냐
그들이 바람에 날리는 검불과 같이 된 적이 있느냐 폭풍에 날리는 겨와 같이 된 적이 있느냐 너희는 하나님이 아버지의 죄를 그 자식들에게 갚으신다하고 말하지만,
그런 말 말아라 죄 지은 그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제 죄를 깨닫는다 죄인은 제 스스로 망하는 꼴을 제 눈으로 보아야 하며
전능하신 분께서 내리시는 진노의 잔을 받아 마셔야 한다 무너진 삶을 다 살고 죽을 때가 된 사람이라면 제 집에 관해서 무슨 관심이 더 있겠느냐
하나님은 높은 곳에 있는 자들까지 심판하는 분이신데 그에게 사람이 감히 지식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기력이 정정하다
죽을 때에도 행복하게 편안하게 죽는다’(17-23)
‘악인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욥은 죄를 지은 악인이기에 회개를 해야 하나님이 회복시키실 것이다’라고 말하는 친구들의 논증은 결코 일반화할 수 없다.
욥은 그들의 논증은 결코 자신을 위로할 수 없음을 선언하고 그들의 위로는 거짓되고 공허한 위로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빈말로만 나를 위로하려 하느냐 너희가 하는 말은 온통 거짓말뿐이다’(34)
누군가를 위로하는 출발은 현실의 아픔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다.
위로와 설득은 분명히 다르다.
욥은 지금 죽음을 제외하고 더 이상의 고통을 맛볼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있다.
여기에 무슨 논쟁이 필요하고 교훈이 필요하며 설득이 필요한가.
그러려면 굳이 욥을 찾아와 함께 오랜 기간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 모든 것은 그저 자기의 의일 뿐이다.
위로는 자기의 의에서 시작되어서는 안 된다.
친구이니까,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가서 해주어야지라는 생각이다.
상가에 가보면 그런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다.
세상 슬픈 것처럼 앉아 있고 함께하지만 결국은 자기의 의를 드러낼 뿐인 경우가 너무도 많다.
그래서 상가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위로가 아닌 분노와 분쟁을 가져오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내 자신의 의에서가 아니라 고통당하는 자의 아픔에서 위로하는 참된 위로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예수님처럼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의를 내려놓고 십자가를 대신 지실 수 있는 위로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
제게 진정으로 주님의 마음을 부어주옵소서.
나의 의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주님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건져내는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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