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9 바른 경청의 자세가 위로의 시작입니다 (욥 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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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26회 작성일 21-11-09 09:23본문
참된 위로의 시작은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귀 기울임이다.
욥은 친구들이 자신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들의 생각과 말로 욥을 공격함에 대해 서운해하고 분노한다.
진정 위로를 하기 위해 온 것인지도 알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욥이 대답하였다 너희는 내 말을 건성으로 듣지 말아라 너희가 나를 위로할 생각이면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것이 내게는 유일한 위로이다
내게도 말할 기회를 좀 주어라 조롱하려면 내 말 이 다 끝난 다음에나 해라'(1-3/새번역)
귀를 기울여듣는 것은 참으로 이타적인 행위이다.
상대방을 알려고 하는 것이고 그의 입장을 헤아리려고 하는 것이며 존중하는 것이다.
귀기울여 듣는 존중이 없는 위로는 참된 위로가 아니다.
더 많은 이들의 소리에 더 많은 시간 더 넓은 마음으로 귀 기울이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욥은 친구들의 논리 곧 의인은 번성하고 악인은 망한다는 것에 반론을 제기한다.
사람의 마음과 상황을 헤아리지 않고 벌인 논쟁은 더 이상 위로의 마음이 없는 차갑고 메마른 논리의 싸움이 되버렸다.
주변에 악한 자들이 번성하는 일은 너무도 흔하다.
그들은 형통하고 장수한다.
자녀들도 잘 된다.
일생을 잘 살다가 편히 죽는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을 필요성을 갖지 않는다.
이런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인가.
악인이 번성하는 일에 대해서 욥의 친구들의 논리를 따른다면 하나님은 선하지 않거나 계시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강조하는 친구들의 주장이 오히려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이 제기하는 반론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상황으로 일반화하여 비판하고 정죄하는 논쟁의 결과이다.
욥은 그런 친구들의 가벼운 생각과 태도에 대해서 너무도 안타까워한다.
'내가 겨우 썩어질 육신을 두고 논쟁이나 하겠느냐 내가 이렇게 초조해하는 데에는 그럴 이유가 있다 내 곤경을 좀 보아라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가 막혀 손으로 입을 막고 말 것이다 내게 일어난 일은 기억에 떠올리기만 해도 떨리고 몸에 소름이 끼친다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잘 사느냐
어찌하여 그들이 늙도록 오래 살면서 번영을 누리느냐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자식을 낳고 자손을 보며 그 자손이 성장하는 것까지 본다는 말이냐
그들의 가정에는 아무런 재난도 없고 늘 평화가 깃들며 하나님마저도 채찍으로 치시지 않는다 (4-9/새번역)
'그들은 그렇게 일생을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때에는 아무런 고통도 없이 조용하게 스올로 내려간다 그런데도 악한 자들은 자기들을 그냥 좀 내버려 두라고
하나님께 불평을 한다 이렇게 살면 되지 하나님의 뜻을 알 필요가 무엇이냐고 한다 전능하신 분이 누구이기에 그를 섬기며 그에게 기도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성공이 자기들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들의 생각을 용납할 수 없다(13-16/새번역)
내가 하나님의 생각이고 뜻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의 논리적 근거가 되지 않도록 성급하게 하나님에 대한 해석과
주장을 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자들이 그렇게 행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으로 단정해서 선포하고 주장하며 심지어 정죄까지 했는데 그 주장이 옳지 않았을 때 회개하고 사과하고 철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그러한 잘못을 행치 않기 위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
더 많은 사람들의 말에 더 많이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더욱 신중하게 주님의 뜻을 판단하고 말하며 그 뜻을 따라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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