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8 교육적 깨달음에 그친 창조주의 위대하심 (욥 36:16~3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80회 작성일 21-12-19 08:49본문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생각할 때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때로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시며 형통하게 하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에게 형벌을 주시기도 한다.
피조물인 인간의 편에서 볼 때 고난은 하나님의 형벌이다.
그 형벌을 당하는 인간은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욥 어른을 보호하셔서, 고통을 받지 않게 하셨습니다. 평안을 누리면서 살게 하시고, 식탁에는 언제나 기름진 것으로 가득 차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욥 어른은 마땅히 받으셔야 할 형벌을 받고 계십니다. 심판과 벌을 면할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욥 어른은 뇌물을 바쳐서 용서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속전을 많이 바친다고 하여 용서받는 것은 아닙니다. 재산이 많다고 하여 속죄받을 수 없고, 돈과 권력으로도 속죄를 받지 못합니다 밤이 된다고 하여 이 형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니, 밤을 기다리지도 마십시오 악한 마음을 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어른께서는 지금 고통을 겪고 계십니다마는, 이 고통이 어른을 악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위대한 스승이십니다’(16-21/새번역)
엘리후도 인간으로서 가지는 사고의 한계를 넘지는 못하고 있다.
고난을 형벌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욥을 정죄하여 자신의 옳음을 드러내려하기보다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교훈을 얻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형통함의 복도 주시고 고난의 형벌도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과거에 누군가의 상황을 이해할 때 먼저 그의 죄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고난은 무조건적으로 죄의 결과라는 신앙의 교육을 받았을 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대해서 배우게 되고 내 자신이 고난을 경험하며 그 의미들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 고난으로 함부로 사람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접하게 되었을 때에 그가 당하는 고난의 원인을 판단하려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혹은 그를 통해 하게 될 것들에 대해 먼저 기도하는 성도의 삶을 살 것이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모두 알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을 주권적으로 행하신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은 하나님만이 가지신 지혜와 지식으로 행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따라 하나님을 판단하려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판단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고 높이고 찬송해야 한다.
자연의 섭리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일들이 가득하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하나님께 이래라 저래라 할 사람도 없고, "주님께서 옳지 못한 일을 하셨습니다" 하고 하나님을 꾸짖을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업적은 늘 찬양받아 왔습니다. 욥 어른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셔야 합니다. 온 인류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멀리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셔서, 우리의 지식으로는 그분을 알 수 없고, 그분의 햇수가 얼마인지도 감히 헤아려 알 길이 없습니다’ (22-26/새번역)
엘리후가 볼 때에는 욥이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지하고 그 뜻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하다.
욥이 형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일만 하나님이 행하시지는 않는다.
욥이 겪는 고난은 하나님의 교훈이며 교육이다.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교훈 속에는 하나님의 교훈이 담겨있고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종국적으로 욥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교훈하신다.
하지만 욥의 환난 가운데에는 교훈 이상의 하나님의 뜻이 있다.
당신의 구속의 역사의 그릇이 될 욥을 통해 하나님은 구속의 명분을 분명하게 확보하신다.
엘리후가 이것까지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주권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교훈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에 더 깊이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달을 수 있기 위해 더 깊이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주님!
고난을 피상적으로 인식하여 남을 판단하지 않게 하옵소서.
고난을 통해 교훈하시는 하나님의 목적뿐 아니라 고난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까지도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관련링크
- 이전글2021. 12. 20 전능자의 두려운 위엄만 부각하는 반쪽 신앙 (욥 37:14~24) 21.12.21
- 다음글2021. 12. 17 불완전하게 전한 하나님의 통치 방식 (욥 36:1~15) 21.12.1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