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7 불완전하게 전한 하나님의 통치 방식 (욥 3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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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42회 작성일 21-12-17 14:31본문
엘리후의 조언이 세 친구들과 다른 점은 욥의 죄를 전제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엘리후는 욥의 의와 불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우심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욥의 불의 때문인가를 논하기 전에 욥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으로 일하시고 역사하신다.
이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은 완전히 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욥을 축복하실 수도 있고 징계하실 수도 있는 주권자이시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불의하다 할 수 없고 그 섭리를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반응해야 한다.
분명 하나님은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복종하지 않는 자를 징계하신다.
‘나는 내가 가진 지혜를 모두 다 짜내서라도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을 밝히겠습니다 내가 하는 이 말에는 거짓이 전혀 없습니다. 건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지금 욥 어른과 더불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큰 힘을 가지고 계시지만, 흠이 없는 사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또 지혜가 무궁무진 하시므로 악한 사람을 살려 두지 않으시고, 고난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십니다 의로운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그들을 보좌에 앉은 왕들과 함께 자리를 길이 같이하게 하시고, 그들이 존경을 받게 하십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으면, 쇠사슬에 묶이게 하시고, 고통의 줄에 얽매여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한 일을 밝히시며, 그들이 교만하게 지은 죄를 알리십니다’(3-9/새번역)
신앙이란 하나님의 행하심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것이 의롭기 때문에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기에 의로운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행하신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의와 다른 일들을 하나님이 행하셨을 때에는 그 목적이나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는 이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깨닫게 된 후에 그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고백한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하나님께서 나의 뜻대로 행하심을 기대하고 그래야 기뻐했던 믿음의 삶을 살았었다.
오랜 신앙생활을 통하여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르고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할 때, 나의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의를 위하여 행하시며 그 의를 드러내심을 경험했다.
더욱 주님의 의로우심을 신뢰하며 그 선하시고 의로우신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겸손하게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은 다시금 복을 허락하실 것이다.
엘리후는 욥의 죄의 유무와 내용을 따지기 전에 먼저 욥이 하나님을 향해 겸손하게 그 섭리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욥이 다시금 회복될 것을 기대하기에 그렇게 조언하는 것이다.
그저 지금 모습을 들먹이고 죄를 따지기 전에 하나님이 회복하실 미래를 위한 조언을 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조언할 때 하나님 안에서 그가 회복할 미래를 바라보고 소망으로 조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에는 비록 지금 내가 듣기 어려운 말일지라도 귀담아 듣게 되고 소망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섬기면, 그들은 나날이 행복하게 살고, 평생을 즐겁게 지낼 것입니다’(11/새번역)
나도 누군가에게 조언하고 상담할 때에 그의 모습을 지적하고 비판하기보다 하나님의 뜻하심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소망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
나에 대한 혹 다른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깨닫고 그 섭리를 수용하며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를 기대하는 신앙을 가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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