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1 바른 대화의 시작, 편견없는 공정성 (욥 32:11~22)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06회 작성일 21-12-14 09:24

본문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을 듣고 있던 엘리후는 잘못된 논쟁을 하고 있는 그들 특히 욥의 반박에 같은 논리로 같은 주장을 계속하면서도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욥의 친구들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세 분이 말씀하시는 동안에, 나는 참으며 듣기만 하였습니다. 세 분이 지혜로운 말씀을 찾으시는 동안에, 나는 줄곧 기다렸습니다

나는 세 분이 하시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세 분께서는 어느 한 분도, 욥 어른의 말을 반증하거나 어른의 말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러고서도 어떻게 지혜를 발견했다고 주장하실 수 있으십니까 세 분께서 이 일에 실패하셨으니

내가 이제 욥 어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대답을 들으시도록 하겠습니다'(11-13/새번역)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긴다.

잘못된 주장을 계속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여 귀를 기울여 듣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지혜이다.

엘리후가 볼 때 욥의 세 친구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내 스스로를 지혜롭다 여겨 나의 생각만이 옳음을 고집하고 주장하고 관철하려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늘 겸손하게 배우고 귀를 기울이는 자가 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욥과 친구들의 논쟁을 듣고 있던 엘리후는 분명 양쪽에게 문제가 공히 존재함을 발견했다.

연소자로서 침묵할 수도 있었지만 잘못된 논쟁을 바로잡는 것이 이들 각자와 서로의 관계를 위해서도 옳고 또한 자신 스스로에게도 옳은 것이라 

여겨 나름대로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엘리후에게서 배우는 것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조언하려는 중재자의 태도이며 또한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여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중재로 인해 하나님의 답을 듣도록 이끄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서도 어떻게 지혜를 발견했다고 주장하실 수 있으십니까 세 분께서 이 일에 실패하셨으니, 내가 이제 욥 어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대답을 들으시도록 하겠습니다'(13/새번역)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고, 말을 참을 수도 없습니다.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새 술이 가득 담긴 포도주 부대가 터지듯이, 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참을 수 없습니다.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이 논쟁에서 어느 누구 편을 들 생각은 없습니다. 또 누구에게 듣기 좋은 말로 아첨할 생각도 없습니다.

본래 나는 아첨할 줄도 모르지만, 나를 지으신 분이 지체하지 않고 나를 데려가실까 두려워서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18-22/새번역)

 

누군가를 중재하고 서로의 사이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객관적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고 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으로 이끄는 것은 더욱 어렵다.

참 지혜와 겸손이 필요하다.

목회의 현장에서 이런 상황을 맞이하곤 한다.

그래서 기도할 수 밖에 없고 지혜를 구할 수 밖에 없다.

정말 조심스럽게 중재하며 하나님의 뜻을 서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중재와 판단의 상황이 온다면 지혜롭게 상황을 이끌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한다.

 

주님!

진정으로 겸손한 지혜자가 될 수 있게 하시고 올바른 중재의 역할을 감당하는 리더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