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13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 아들 (눅 3: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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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64회 작성일 22-01-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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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적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사명을 확신하고 살아가는 것이며 그 사명에 헌신하도록 하는 것이 영적인 정체성이다.

정체성의 자각은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가치를 알게 하며 헌신의 목적에 붙잡히게 하고 동기를 부여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례를 받고 나오신 예수님께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알게 하시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향해 시작하시는 공생애에 헌신하실 수 있도록 하는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21-22)

 

사역자에게 분명한 영적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격려할 때 그가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행하는지 내 자신이 경험하고 또한 다른 이를 통해서도 알게 된다.

반면에 영적 정체성을 깨닫지 못해서 사명의 삶을 살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경우도 접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역자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부르심에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하심에 감사한다.

다른 이들 역시 이런 영적 정체성을 가지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격려하고 세우는 일에 더욱 힘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적 정체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족보는 늘 정체성과 관계된다.

내가 누구인가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위기에 처할 때 마다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족보를 늘 되새기게 하신다.

예수님의 족보는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가지신 예수님이어떻게 약속을 따라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는가를 나타낸다.

아브라함 곧 이스라엘의 조상에게서 시작되어 유대인의 왕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요셉의 계보를 따라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태복음 족보와 대비하여 요셉에게서 시작되지만 마리아의 계보를 따라 하나님께로 향하는 누가 복음의 족보는 다윗의 혈통보다 성령의 잉태를 깨닫게 하고, 유대인의 왕 보다는 온 인류의 구세주 되심을 깨닫게 한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실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런데 그 오심은 철저히 하나님의 구속사의 계획을 따라서 약속하신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셨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이방인들은 자신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얀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아모스요 그 위는 나훔이요 그 위는 에슬리요 그 위는 낙개요 그 위는 마앗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서머인이요 그 위는 요섹이요 그 위는 요다요 그 위는 요아난이요 그 위는 레사요 그 위는 스룹바벨이요 그 위는 스알디엘이요 그 위는 네리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앗디요 그 위는 고삼이요 그 위는 엘마담이요 그 위는 에르요 그 위는 예수요 그 위는 엘리에서요 그 위는 요림이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시므온이요 그 위는 유다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요남이요 그 위는 엘리아김이요 그 위는 멜레아요 그 위는 멘나요 그 위는 맛다다요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 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그 위는 아미나답이요 그 위는 아니요 그 위는 헤스론이요 그 위는 베레스요 그 위는 유다요 그 위는 야곱이요 그 위는 이삭이요 그 위는 아브라함이요 그 위는 데라요 그 위는 나홀이요 그 위는 스룩이요 그 위는 르우요 그 위는 벨렉이요 그 위는 헤버요 그 위는 살라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아박삿이요 그 위는 셈이요 그 위는 노아요 그 위는 레멕이요 그 위는 므두셀라요 그 위는 에녹이요 그 위는 야렛이요 그 위는 마할랄렐이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23-38)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을 수 있었던 데에는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한 감동과 확신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구속의 약속이 너무나도 신실하게 성취되어지는 과정 때문이었다.

이방인인 내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은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주님의 신실하심에 너무나 감사한다.

이 신실하심으로 구원을 얻은 내 자신 역시도 분명한 영적인 정체성으로 주님 구원의 섭리를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주님!

온 인류의 구주 곧 나의 구주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공생애를 사셨듯이 저 역시도 분명한 영적 정체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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