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4 구세주를 품고 드리는 구원의 찬가 (눅 1: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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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63회 작성일 22-01-0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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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아는 자는 은혜를 수용하여 누리며 은혜를 누리는 자는 은혜를 찬미한다.

성령으로 인한 잉태를 은혜라고 여기며 받아들이는 자가 있을까?

아마 믿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수용하는 것은 영적인 사건이다.

잉태의 은혜를 수용한 마리아는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했다.

그녀의 잉태 역시 은혜로 된 것이라는 가브리엘의 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그 은혜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리아를 보는 순간 엘리사벳의 태중의 아이(후에 세례요한)가 성령의 감동으로 태동을 일으켰다.

이에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잉태와 방문을 찬양한다.

은혜를 아는 자, 은혜를 경험하고 누리는 자의 반응이다.

은혜 자체가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돌아보심이고 배려이기에 은혜를 아는 자는 그것을 결코 마땅하다고 여기지 않으며 이에 감사와 찬미로 반응한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39-45)

 

신앙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아 누리면서도 그것들을 당연하게 여길 때가 많았다.

은혜를 구할 때는 간절하게 사모하고 기도하면서 막상 은혜를 주시면 당연히 여겼다.

성령의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만 민감하지 않고 받은 은혜에 더욱 민감한 사람이다.

2022년 새해에는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여 받은 은혜와 복을 분별하고 감사하며 찬미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엘리사벳을 통해 은혜를 더 깊이 깨달은 마리아는 진정으로 은혜의 찬미를 드린다.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높이며 자신이 받은 은혜의 내용과 의미를 노래한다.

영혼으로 노래하고 마음으로 노래한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46-50)

 

은혜를 아는 것은 은혜의 근원과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알고 고백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은혜'라고 고백하는 말에는 한편으로는 은혜에 대한 참 고백을 담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은혜에 대한 무심함을 내포할 수도 있다.

진정으로 은혜를 헤아리고 기억하며 감사하고 노래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

은혜를 알고 헤아리고 기억하고 노래하고 선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를 위해 더욱 성령충만하여 은혜에 민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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