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27 더 많이 용서받고 더 사랑하는 제자 (눅 7: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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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21회 작성일 22-01-27 11:15본문
성도는 주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배우고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시험하거나 판단하거나 이용하려고 대하시지 않았다.
그 인격 자체를 존중하셨고 비록 그에게 죄가 있어도 회개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셨다.
반면에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을 판단하고 시험하고 정죄했다.
심지어 자기들의 옳음을 주장하고자 사람의 목숨을 이용하기도 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
한 바리새인의 집에 가신 예수님은 그 곳에서 한 여인의 존중을 받는다.
비록 그 여인은 죄를 지었으나 예수님께 나와 긍휼을 얻고자 향유를 발에 붓고 소중한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바리새인은 예수께서 죄를 지은 여인을 아시고 판단하실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었다.
이에 예수님은 그의 생각을 아시고 큰 죄를 탕감받은 자가 탕감해준 이를 향한 사랑이 더 큼을 비유로 말씀하시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종교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사죄의 은혜를 깨달음에 있음을 알게 하신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36-42)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사람을 판단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그만큼 내게 종교성이 강해지기 때문이며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경험하면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방어기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행동을 자꾸 종교적으로 판단하려 든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 이런 나의 모습을 회개하게 된다.
주님처럼 한 영혼의 회복을 중시하고 그 영혼을 존중하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위를 바리새인과 비교한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탕감받을 빚이 없다고 여기는 영적 교만과 종교적 우월감으로 가득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의심과 교만으로 가득차 손님의 발을 씻도록 돕는 기본적 예의조차도 지키지도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시험하려 들었다.
예수님은 이 여인과 비교하며 바리새인 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을 나타내신다.
종교인들은 자신들이 종교적으로 훨씬 의롭다 여기기에 회개와 죄사함의 은혜를 구하는 것에 진심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죄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런 모습을 지적하시고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사죄를 선포한다.
이에 종교인들은 신성모독이라 여기며 예수님을 증오한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44-49)
나의 나됨이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한시도 잊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은혜의 자각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참된 겸손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며 사람들은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서 날마다 속죄의 은혜를 기억하며 주님을 섬기고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주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늘 감사하며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겸손함으로 모든 사람들을 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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