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2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배교하지 않는 믿음 (눅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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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45회 작성일 22-02-13 10:20본문
신앙의 삶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다.
그러므로 참 신앙을 위해서는 사람을 의식하여 사람들 앞에서는 종교적인 척 하면서도 실제 내면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찬 위선을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의 모습을 그런 종교인의 외식 곧 위선으로 표현하셨다.
그 위선은 누룩과 같아서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가 우리의 삶을 잘못된 삶으로 부풀어 오르게 만든다.
그렇게 내면에 감추어진 모든 위선은 결코 숨길 수 없이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게 되므로 성도는 우리의 내면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신앙생활 해야 한다.
우리의 몸과 삶에 영향력을 끼치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두려워하지말고 우리의 영혼까지도 지옥에 던져 넣으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1-5)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사람들을 신경 쓸 때가 많다.
특히 영적인 리더로서 성도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칠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성도들 앞에서 종교적인 모습을 나타내게 되고 좀 더 거룩하게 보이도록 노력할 때가 있다.
문제는 나의 내면과 삶이 겉으로 드러내는 것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지만 나의 연약함이 나의 일상 속에서 나타날 때가 있다.
어찌하든지 그 연약함들을 다스리고 진실되고 순전한 성도로 살아가고자 애쓴다.
사람들 앞에서의 나의 모습과 나 홀로 있을 때 혹은 사적인 나의 모습이 온전히 일치할 수 있기를 늘 기도한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든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성도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애를 쓸 때 하나님께서도 나를 기억하시고 소중히 여기신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감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믿는 하나님을 언제나 나타내고 시인하는 삶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고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고 부인한다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앞에서 나를 부인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보내시고 죽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나 신뢰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 것이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6-9)
하나님을 신앙하면서 때로는 정말 하나님도 나를 기억하고 계실까, 내 삶을 아시고 도우실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참새 한 마리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실리 없다는 본문의 말씀이 너무도 큰 위로와 기쁨이 된다.
주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심을 신뢰하면서 나도 모든 이들 앞에서 예수께서 나의 주님이심을 시인하는 성도로 일평생 살아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하신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시다.
성령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거역하고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불경죄이다.
성령이 주신 믿음, 성령이 증거하는 사실,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다.
두려워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는 다시금 용서 받았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고 믿지 않으며 인정하지 않고 방해하는 자는 용서 받을 수 없다.
성령을 모독하고 거스르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10)
주님!
위선적 종교인이 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저의 내면을 정결하게 하고 참된 믿음으로 순종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진정 내면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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