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21 연약해 실패하는 일상, 회개하고 일어서는 제자 (눅 22:5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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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92회 작성일 22-03-27 10:53본문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집에 심문을 받으시기 위하여 잡혀 가신다.
베드로는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간다.
평상시 예수님은 늘 베드로를 가까이 두셨고 영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자리에 동행하도록 하셨다.
베드로 자신도 결코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선언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예수께서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오히려 멀찍이서 상황을 살피면서 따라간다.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54)
베드로의 이런 모습이 내 신앙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예수님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으려 할 때는 가까이 주님과 친한듯하다가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거나 예수님으로 인해 고난을 겪어야 할 때는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있는 연약함이 내게도 있었다.
나의 남은 삶 가운데 상황에 따라 예수님과 거리를 두는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렇게 예수님을 멀찍이서 따를 때 시험이 찾아오게 되며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리 따를 때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줄로 알았을 것이다.
언제든 피할 준비를 하면서 한 편으로는 스승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해서 어정쩡한 거리를 두고 따르던 그를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가 예수와 한 무리였음을 말한다.
사실 종교지도자들이나 군인들이 베드로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 집에서 일하는 하인이나 구경꾼이 그렇게 이야기 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알고 그의 제자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베드로 자신은 결코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상황에 굴복하여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55-60)
예수님을 멀찍이서 따를 때 베드로는 다가온 시험에 굴복했다.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따랐다면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지언정 더욱 큰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것이며 그 어떤 시험에도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에 상관없이 항상 주님의 곁에 머물기를,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거짓된 모함이 아닌 단순한 영적 사실에도 넘어지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과 동행하며 당당하게 영적인 사실들을 선포하고 인정하며
담대히 주님과 함께 할 것을 결단한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을 때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울음소리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을 하게 된다.
베드로의 통곡은 참회의 통곡이었을 것이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61-62)
누구나 주님 앞에서 득죄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나의 죄를 깨달을 수 있는 닭울음소리를 준비해 놓으신다.
그 소리를 들을 때 그냥 지나칠 수 있고, 혹은 참회하고 돌이킬 수 있으며, 단순히 후회하고 가책을 못 이겨서 완전히 주님을 떠날 수도 있다.
나의 삶 가운데 그런 경험들이 있었다.
사람, 환경, 말씀 등을 닭울음소리로 사용하셔서 패배하고 쓰러진 나를 깨우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셨다.
다시금 주님 앞에서 참회하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음이 너무도 감사한다.
주님을 멀리하거나 부인하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득죄하였더라도 닭울음소리에 통곡하며 돌이킬 수 있는 신앙적 양심이 늘 살아있기를 기도한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길 소망한다.
주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멀리하지 않게 하옵소서.
늘 주님 가까이서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늘 영적으로 깨어서 담대하게 영적인 사실들을 선포하며 주님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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