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13 하나님 권한에 순종하는 하나님 아들 (요 1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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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30회 작성일 22-04-13 10:16본문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죽음을 통해 인류의 죄를 사하실 것에 대해 예언하게 하셨다.
예수님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삶이었다.
예수님을 재판했던 빌라도는 예루살렘 총독으로서 자신이 권세를 가지고 예수님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여겼으나 이는 그의 권세에 의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하신 일이었다.
당시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고 놓아 주기를 원했지만 자신이 가진 권세로도 예수님의 죽음을 막지 못했고
오히려 죄 없는 자를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죽이는 십자가형으로 죽게 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진 일임을 알게 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여 놓아주기를 원했지만 뜻대로 하지 못했던 것은 이 또한 성경에 예언된 일로 십자가를 향하는 고난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1-4)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3-6)
예수님이 하나님 뜻에 순종하시며 십자가로 향하면서 당신의 권세를 온 인류를 위한 죽음에 사용하실 때 빌라도는 자기를 위해 죄 없는 자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내어 주는 데 권세를 사용했다.
예수님의 권세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권세, 의로운 권세, 살리는 권세였다면 빌라도의 권세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권세, 부정한 권세였다.
그가 이렇게 권세를 행사한 것에 대한 대가를 후대에 인류 역사 속에서 받고 있다.
교회와 성도들이 신앙고백을 할 때마다 예수를 죽인 자로 고백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죽이도록 내어주신 종교권력자들의 죄가 빌라도 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신다.
종교 권력자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십자가에 죽이도록 강요했다.
그들은 교만하고 탐욕스러우며 불경건한 권세자들이었다.
그나마 빌라도는 사회법에 비출 때 예수님을 무죄하다 여겼지만 종교 권력자들은 종교적 판단으로 예수를 하나님께 저주받을 신성모독으로 정죄하여
나무에 매달아 죽게 한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5-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11)
종교의 이름으로 짓는 죄는 너무도 무섭고 무모하며 비윤리적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정죄당해 죽었는가
진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서로 싸우고 정죄하여 죽였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세워놓고 외친 한 마디 ‘이 사람이로다’라는 말이 지금도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의 무고로 인하여 이렇게 비참한 몰골로 서있는 이 사람을 보라 너희는 일말의 양심도 자비도 없는가’ 라고 종교인들에게 외치는 듯하다.
그러나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악한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자비도 양심도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사칭했다는 죄목으로 죽이도록 요구했다.
그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한 저들의 모습과 오늘 신앙의 이름으로 온갖 정죄와 다툼을 일삼는 우리들의 모습이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빌라도와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며 그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똑같은 일들을 벌이고 있다.
무죄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정죄하고 십자가에서 죽게 한 죄악으로 얼룩진 역사를 오늘날 되풀이 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우리가 같은 일을 반복한다면 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로다’ 라는 빌라도의 소리와 나를 대신해 처참하게 서 계신 예수님의 모습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며 믿음으로 그 분을 끌어안고
진정한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따르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
진리 위에 서서 의를 따르는 참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진리의 명분으로 진리를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진리이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 사람입니다’ 라고 회개하며 주님의 판단과 긍휼을 구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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