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8 복음 전도를 위한 사역자의 권리 포기 (고전 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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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03회 작성일 22-05-18 09:08본문
교회를 분열시키고 무너뜨리는 자들은 교묘한 말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며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유도하는 자들이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기 위하여 교묘한 말로 성도들을 미혹했다.
당시의 사도들은 교회에 생활비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의 재정을 요구하여 생활비를 받았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이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교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선한 의도였다.
그러나 교활한 자들이 이런 바울의 의도를 곡해하여 사도권을 주장할 근거가 없어서 생활비 청구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도록 부추겼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당당하게 주장한다.
자신은 분명히 부활의 주를 목도하였고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복음을 전하고 고린도의 성도들을 구원한 사도였다.
특히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사도로서의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구원한 자들이다.
그렇기에 그 어떤 교회에서보다 당당하게 사도권을 내세울 수 있고 사도의 권리로 생활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 권리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교활한 자들은 이런 바울을 음해하고 폄하하여 영향력을 끼치게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1-6)
영적 판단이 영적 사실을 앞서서는 안된다.
성도들은 나름대로 영적인 판단을 한다.
그러나 그 판단은 반드시 영적인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아무리 자신의 논리가 정연하고 주장이 옳게 여겨져도 그것이 사실에 대한 무지에 근거하면 그것은 오히려 영적인 죄를 짓게 된다.
사도 바울을 판단했던 자들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지적으로 뛰어난 자들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모세와의 관계를 알지 못하고 비난하고 도전했던 미리암과 아론, 고라, 다단, 아비람과 같은 자들이며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알지 못하고
정죄하여 죽인 제사장, 종교 세력들과 같은 자들이다.
반면에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긍휼함과 신실함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돌보았다.
복음 전도의 장애물이 되도록 하지 않기 위함이다.
영적 사실보다 앞서 판단하고 정죄하는 죄를 짓지 않기를 기도한다.
또한 바울 사도처럼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역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바울은 율법을 통해 자신이 가진 권리의 정당성을 변호한다.
군인, 농부, 목자가 자신들의 헌신에 합당한 대가를 받으며 곡식을 떠는 소가 먹을 것을 주워 먹을 수 있는 권리(신25:4)에 비유하며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내려놓음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되도록 하지 않기 위함임을 설명한다.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7-12)
지식과 논리가 아니라 참 사랑과 가치로 헌신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으로서의 동등 됨을 취하시지 않고 우리와 같이 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런 주님 앞에서 무엇을 주장하고 내세울 수 있을까.
겸손하게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르고 그 삶을 따르며 오직 복음만을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사는 성도, 사역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하늘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기억하고, 모든 권리를 복음을 위하여 내려놓은 사도 바울을 생각합니다.
주님과 사도들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걷고 그 삶을 본받게 하옵소서.
오직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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