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3 부지중에 환대한 천사, 위기에서 건지시는 손길 (창 1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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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07회 작성일 22-09-07 22:50본문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성에 들어가 살았던 롯은 죄악으로 가득한 소돔성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방식으로 살았을까를 생각해본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대로 살려고 애썼던 아브라함의 삶의 방식을 따라 소돔성에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소돔인들의 삶의 방식을 모두 따르지 않는다 해도 그들과 어울릴 수 없는 자신의 모습, 또 소돔의 사위들과의 괴리감,
그리고 내적인 갈등과 죄책감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죄악으로 가득함을 알고서도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을 선택한 삶의 결과였으며 책임이었다.
물론 소돔 사람들도 자신들과 온전히 동화하지 못하는 롯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롯이 그들의 범죄를 만류했을 때 롯을 향한 언행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9)
소돔에 들어선 주의 사자들을 선대하려고 초대한 롯에게 소돔거민들은 그들을 겁탈하게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소돔의 성적 타락, 특히 동성애적 성적 타락이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주의 진노가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인권적 범죄 차원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왜 하나님께서 소돔의 멸망의 근거를 이 사건 하나로 결론 지으셨을까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당시 소돔 땅에는 이 사건 외에도 반 인권적 범죄가 만연했을 것이다.
동성애적 범죄는 더 이상 용서가 불가한 극치를 보여주는 반창조적 반인권적 범죄인 것이다.
문제는 그 성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살았던 롯이 그 성을 살려낼 자격과 권세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롯이 길손들 대신 자기 딸들을 주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한 것은 이미 소돔의 삶의 방식을 따를 수 밖에 없던 그의 한계를 나타내준다.
그나마 자기와 가족들만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뿐이다.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1-5)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8)
소돔에 살면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소돔 사람들에게 소중한 딸들을 내어주고 적당하게 타협하려했던 롯이 아니라 소돔에 살지 않지만
소돔을 살릴 수 있는 중보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이 세상을 구별된 성도의 권세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최후의 심판 날에 죄가 죄인 줄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 질서를 거스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원과 심판의 복음을 전하고 중보할 수 있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주님!
세상 속에서 나의 모습이 롯의 모습인지 아브라함의 모습인지 깊이 돌아보게 하옵소서.
세상과 타협하며 구걸하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의 권세로 중보하고 구원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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