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0 하나님 영광을 드러낸 부활의 표적 (요 11: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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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7회 작성일 25-02-1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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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놀라운 표적을 행하시지만 언제나 표적의 목적은 사람에게 있으셨다.

사람을 위로하고 회복시키고 살리시며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러 오셨고 살리실 것을 알고 계셨지만 죽음 앞에서 슬픔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 아파하셨다.

이것이 신본주의적 휴머니즘이다.

인간애가 결여된 신앙은 단순한 종교에 불과하다.

인간의 숭배를 받고 두려움을 주는 이방 종교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모든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 아들까지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다.

예수님이 사람들에 슬픔을 보시고 비통해하셨다고 말씀한다.

인간의 연약함, 슬픔과 아픔, 절망, 나아가 연약한 믿음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오랫동안 목회를 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어느새 부지불식간에 바리새인처럼 교만하고 무정한 종교인으로 서있음을 스스로 깨달으며 

지나온 시간 가운데 그렇게 성도들을 대하고 목회해왔던 것들을 회개한다.

성도로, 영적리더로 살아갈 남은 날들 가운데 진정 신본주의적 휴머니즘으로 사람을 회복시키고 살리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36-38)

 

성도가 믿어야할 영적 팩트는 상황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다.

주님께서 살리시고자 의도하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덤의 입구 돌을 옮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사로의 시신에서 벌써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는 상황을 언급한다.

이미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고 끝났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믿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 하시면서 나사로를 살려 무덤에서 나오게 하신다.

믿음은 어떤 상황이든 그 상황에 사로잡혀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상황을 다스리시는 주의 뜻에 응답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는 살리심에도, 죽게하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살리실 것을 죽는다고, 죽게 하실 것을 살리신다고 기정 사실화하는 행위는 믿음이 아니라 상황에 함몰된 자의적 판단이다.

성도는 어떤 상황이든 주님의 뜻을 따르고 수용해야 한다.

나사로의 경우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 분명히 살리고자 하셨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영혼을 데려가신다.

그 또한 자연적 , 상황적 섭리를 통한 주님의 뜻이다.

내 생각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멀리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이든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나의 믿음이 영적팩트, 곧 주님의 뜻에 사로잡혀 하나님 영광을 구하고 경험하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39-44)

 

주님!

주님의 마음을 잃지 않고 헌신하게 하시며 주님의 뜻에 붙들려

영광을 사모하고 경험하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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