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1 누구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 (갈 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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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7회 작성일 24-10-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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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이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진정한 영적 자유를 포기하는 신자들이다.

복음을 통해 구원의 진리를 알게 되고 믿음을 결단했지만 복음의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확신하지 못하고 거짓 가르침에 속아 다시금 율법주의로 돌아감으로 

스스로 속박되어 버린 것이다.

복음의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얻었지만 스스로 율법 안에 자기를 다시 가두려는 어리석음이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다른 복음은 없다고 했다.

진정으로 우리를 자유하게 해주는 진리는 복음 뿐이다.

사도 바울은 그 복음을 믿기에 진정 자유 할 수 있었고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

바울은 복음 안에서 자유하지 못했던 베드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다.

바울도 그것을 인정하지만 아닌 것은 분명하게 아닌 것이다.

복음 안에서 잘못된 것은 분명 고쳐 잡아야 한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디옥에서 베드로는 이방인과 식사를 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주의자들을 보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고 다른 이들, 심지어 바나바까지도 자리를 피했다.

그들은 복음 안에서 진정 자유하지 못했다.

복음적 삶은 진리의 원칙을 따르는 삶으로써 관습이나 이목이 아니라 복음이 다스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의 행동은 복음적 원칙이 불분명한 행위였던 것이다..

그가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것은 이미 율법적 삶을 포기한 것이다.

그로 하여금 율법적 삶을 포기하게 한 것이 복음이라면 그는 복음의 원칙을 따라 사는 본이 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이방인과 함께하던 자리를 피함으로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복음적 삶의 가치에 혼돈을 주었다.

나아가 그들에게 율법적 삶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베드로는 진정한 복음의 가치를 따르지 못했다.

나의 영혼을 진정으로 자유하게 한 복음의 원칙을 바르게 알고 그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삶으로 다른 이들을 자유하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11-15)

 

바울이 오랫동안 믿고 따른 종교적인 원칙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 복음의 진리를 선택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진리임을 알고 믿음을 선택한 것이다.

진리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실을 설명하고 예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는 사실을 해석하고 사실은 진리를 드러낸다.

사실로 드러난 진리를 따르는 것이 순종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진리는 사실로 드러난 진리이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실이 진리를 증명한 것이다.

영적 사실을 접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진리를 선택해서 믿기로 순종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제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을 선택했다.

이 선택이 율법적 구원의 올무에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 것이다.

바울이 깨달은 것은 지금까지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헛된 생각이었음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15-16/새번역)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까지 율법과의 관계는 종교적 안도감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사도바울은 지금까지 하나님과의 종교적 관계가 거짓 안도감을 위한 관계였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스스로를 속인 죄성을 발견했다.

결코 온전한 선을 행할 수 없는 죄성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진리의 실체와의 참된 관계만이 구원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구원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데 나의 영적 관계의 실체가 무엇인가 깊이 묵상한다.

종교적 안도감인가 아니면 하나님과의 실제적 만남인가.

믿음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 안에서 자유를 선택하는 결단이이며 내가 신앙하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살아가는 삶이다.

내가 십자가를 믿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내가 부활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구원을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하심을 받으려고 하다가,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면, 나는 나 스스로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19-2/새번역)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셔서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주님과 영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며 진정한 영적 자유함을 누리길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참 자유함을 누리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삶이 진정한 진리인 복음의 원칙 아래에서 자유함고 자유하게 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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