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6 행함의 멍에가 아닌 은혜의 복음으로 (행 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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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61회 작성일 23-07-2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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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가장 큰 장애물은 불신자의 배척이 아니라 잘못된 신앙의 신념이나 체계이다.

바울 일행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가장 심한 대적자들은 불신의 이방들인 아니라 유대인들이었으며 심지어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행하고 계시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이 조상 때로부터 배워온 신앙 체계들과 지식과 관습에만 매여 있었다.

복음 이전에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으려면 할례를 받고 세례의식까지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하나님은 할례를 받지 않고 믿는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의 세례를 내려주심으로 유

대인들처럼 율법으로 구원얻지 않음을 보여 주셨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을 가지고도 성령을 받을 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런데 바울처럼 이방인 전도의 과정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해보지 못한 유대인들

특히 믿기 전 바리새파에 속해 율법을 철저히 믿던 자들은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특히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와 논쟁을 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사도들의 의견을 묻기를 원했다.

바울과 바나바가 경험한 영적 경험들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견해만을 주장했던 믿는 유대인들과 달리 

안디옥 교회는 겸손하게 예루살렘의 권위있는 지도자들의 뜻을 묻고 따르려고 한다.

사실 안디옥교회는 재정적으로도 예루살렘교회보다 넉넉하고 영적 경험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기에 유대인들의 반발이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의 권위있는 사도들에게 의견을 묻고 따르려는 겸손함과 신중함을 보여주었다.

내 자신과 교회, 그리고 성도들 모두가 우리의 생각이나 가치 경험만을 절대화해서 오히려 복음에 반하거나 복음을 방해하는 성도가 되지 않도록 

겸손하게 우리의 가치와 생각들이 검증되고 시행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성령의 지혜와 다스림을 간구한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1-5)

 

복음을 변증하고 영적인 원칙들을 세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역사와 그 역사하심을 깨닫고 따르려는 마음이다.

이방인의 구원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모인 첫 번째 공회의에서 많은 토론들이 이루어진다.

수천 년 이어온 유대인들의 전통과 이방들에게 역사하신 성령의 역사와 간격은 당시 교회지도자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논의의 주제가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의 사역이 종교인들 사이에 너무나 큰 충격이고 문제였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전통이나 관습, 신학적 내용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제적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뜻이다.

어떤 종교적인 가치나 제도, 관습들도 하나님의 생각보다 앞설 수 없고 앞서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바리새파에 속했던 유대인들이 율법준수와 할례를 강하게 주장하였을 때에 베드로는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바울의 경험보다는 베드로의 경험이 사도들의 결정에 더 의미있는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그는 바울과 같이 이방인 선교를 위한 사명자가 아니었고 예수님의 수자제였기 때문이다.

바울의 주장은 자칫 자기사역을 합리화하기 위한 억지라고 여겨졌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이때를 위해서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 고넬료 집안에서 역사하신 성령을 경험하게 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이 자유하게 하신 이방인들에게 율법의 멍에를 메울 필요가 없음과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게됨을 역설한다.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6-11)

 

주님!

저의 생각이나 가치, 관습, 제도를 주님의 뜻과 역사하심 가운데 내려놓을 수 있는 겸손과 순종이 있게 하옵소서.

그저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겸손한 그릇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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