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 나귀 새끼를 타신 겸손과 평화의 왕 (막 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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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69회 작성일 24-02-05 14:05본문
예수님의 행적을 들여다보면 슬쩍 지나가버리거나 아니면 더 나은 모양새를 갖출 수도 있음직한 행보들이 있다.
이런 주님의 행적 중 한편으로 우습고 한편으로 융통성 없는 행적이 바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이다.
백마도 아니고 병거도 아니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에수님.
예수님의 삶을 움직이는 동력과 가치는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해 본다.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모습은 성도로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따라 살아가고 행동해야할지는 보여주는 장면이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이유는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9:9)
예수님의 삶을 움직이는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것임을 알고 계셨기에 그 목적을 위해 사셨다.
예수님은 탄생부터 부활 승천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예수님의 삶과 행동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돌아가실 때의 마지막 말씀도 ‘다 이루었다’였다.
이렇게 철저히 말씀을 성취하시는 삶을 살아가실 수 있는 힘은 분명한
영적 자의식과 소명으로부터 나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분명한 자의식이 있으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에 대한 분명한 소명감을 가지셨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요17:4/새번역)
우리에게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왕같은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고 거룩한 나라이다’ 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하며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것은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드리는 삶이면서 동시에 그 말씀이 나타내는 본질적 가치에 순종하는 삶이다.
‘아무도 탄 적이 없는 나귀를 타신 왕’이 의미하는 것은 거룩과 겸손의 왕이다.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려하심이라’ 하셨다.
예수님은 거룩한 왕이셨으며 지극히 겸손하셨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기적의 길이었다.
못보는 자를 눈뜨게 하고 무엇보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냈다.
사람들은 익히 예수님의 소문을 듣거나 목도하였고 예수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으며 명절을 지키러 오던 수많은 사람들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환호하면서
그 뒤를 따랐다.
종려가지를 흔들어 환호했고 자기 옷을 벗어 깔았다.
바로 그 때가 자신이 왕되심을 그 어느 때 보다 더 극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때이다.
기왕이면 사람들 핑계 삼아, 상황을 핑계 삼아 좀 더 멋있게 입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나귀를 타셨다.
예수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과 겸손의 가치를 따르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삶은 삶의 모든 과정에서 말씀의 가치를 따르는 것입니다.
목적은 반드시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
가치를 잃어버린 목적은 그 목적 자체가 의미없고 이루어질 수도 없다.
주님은 나귀를 타신 삶을 사셨다. 피하지 않으셨고 꾸미지 않으셨다.
그저 말씀대로만 하셨다. 가치대로만 하셨다.
상황이 말씀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상황을 지배하는 삶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온전히 말씀의 가치를 따라 주님의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거룩과 겸손의 삶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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