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20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생명을 내어 준 사랑 (막 15: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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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박영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63회 작성일 19-02-2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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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바라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를 묵상해본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 진리의 수호자인양 자처하며 예수를 조롱하고 욕하는 종교인들

그들의 사주에 넘어가서 선동자가 되어버린 무지하고 비굴한 군중들,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옷마저도 나눠가지겠다고 아귀다툼하는 물욕에 눈이 먼 군인들.

이런 인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어가시며 예수님은 너무도 안타까우셨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라도 자신을 보아주시고 관심을 보이신다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가시는 아들을 철저히 외면하셨다.

사실은 그 밑에 있는 무리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그런 취급을 당하고 심판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아들을 죽이시면서 그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열어주신다.

이것이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다.

십자가 밑의 여러 부류의 인간들 가운데 세상 사람들이 속하여 있다.

어떤 이는 나름의 가치로 예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조롱하며 어떤 이는 무덤덤하게 지켜보며 어떤 이는 비판하는 자의 무리에 속하여 의미도 모른 채 동조하며 

예수의 죽음을 마땅히 여긴다. 나 역시도 그들 무리의 한사람이었다.

무시했고 비판했고 방관했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예수님을 인정하고 자비를 구한 자는 아이러니하게도 극악한 죄로 함께 죽어가던 한 강도였다.

다른 복음서의 내용을 따르면 그는 예수님의 무죄하심을 인정하고 하늘의 자비를 구했다.

자기도 죽어가고 예수님도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를 사죄해주신 예수님을 비난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자기 자신이 처해있고 

예수님께 이런 고백을 하고 자신을 의탁했다면 주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셨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건 믿음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 우편 강도와 같은 마땅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며 예수님의 자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라야 나는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고 구원의 은혜를 입는다.

여전이 내 자아가 살아 살기등등하게 예수를 비난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사람들에게 동조하며 권세를 따라 세류를 따라 살아가는 자는 

결단코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죄 사함의 은혜를 입을 수 없다.

나 역시 절대적 절망과 절대적 은혜 앞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 많은 무리 가운데 강도와 같은 심령이 되어서야 주님을 만났다.

그래서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 마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고 조롱하는 종교인의 마음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내 마음이 그들에게 휩쓸리는 군중의 마음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는 십자가에서 죽어 마땅한 강도같은 인생이고 죄 없으신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나를 살리셨기에 

주님 나라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주님께서 분명히 나를 기억하시고 나의 이름을 부를 실 것을 소망한다.

 

주님!

십자가 밑에서 떠드는 어리석은 군중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원래 내가 달려있어야 할 그 십자가의 자리에서 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 자비를 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내게 베푸신 그 은혜를 결단코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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