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25.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약 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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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74회 작성일 19-04-2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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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생명력은 행함으로 드러난다.

믿음은 진리에 대한 확신이요 그 진리를 실천하려는 결단이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생명력이 없는 죽은 믿음이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14,17)

 

살아있는 믿음은 내가 믿는 진리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는데 내 삶이 내가 믿는 가치를 따라 사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이는 그 믿음의 실체가 불분명한 것이다.

결국은 내가 온전히 믿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 믿음은 거짓이고 또한 나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믿음을 가진 자들은 진리를 따라 행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완전한 행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실천하고자 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사도 야고보는 세상 가운데 검증될 수 있는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믿음은 귀신들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이다.

단순히 하나님의 실존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뜻대로 살기를 결단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롭게 여기셨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이 단지 감정상으로의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다.

믿음으로 순종하여 이삭을 드린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란 행함이 없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다. 그런 믿음이란 있을 수가 없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역사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22)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믿음은 감정적으로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음은 전인격적인 수용이다.

믿음의 내용 곧 복음의 진리를 인식하고 그 진리를 받아들이고 살기고 의지적으로 결단할 때 감정적인 반응이 내게 따라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복음을 믿는다고 결단할 때는 복음이 요구하는 삶을 받아들이고 행할 것을 결단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복음에 대한 믿음이 없는 행함은 결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또한 행함이 우리의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은 진리를 따르는 삶에 대한 수용을 포함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내 자신이 먼저 진리를 따르는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낼 수 있기를 원한다.

또한 모든 성도들이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들 또한 믿음을 증명할 수 있기를 원한다.

사단은 행함없는 믿음에 대하여 정죄하고 참소한다. 그래서 믿음이 흔들린다.

살아서 내 삶을 주관하는 참 믿음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길 기도한다.

 

주님!

제게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제가 온전히 믿음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내 안에 주인으로 거하시는 주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믿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해지게 하옵소서.

나의 행함으로 세상이 나의 믿음 알고 따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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