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 주님의 들러리 되어 기쁨으로 충만한 제자 (요 3: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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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31회 작성일 20-01-10 09:15본문
성숙한 성도는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올바르게 알고 수행하는 성도이다.
성숙하지 못한 자들일수록 자신을 드러내고 과장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여 분수에 합당하지 않은 일들을 행한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이 가운데 가장 큰 자라 하셨다.(마11:11)
이는 세례 요한이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의 아들을 위한 사역을 잘 감당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세례를 베풀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세례를 받으러 나아왔다.
그 중에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있었으며 이에 대해 마음이 불편했던 요한의 제자들이 이 사실을 요한에게 알렸다.
그러자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분명하게 하며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자라고 선포한다.
자신은 사라져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흥해야 함을 선포한다.
당시 자신의 명성이 예수 보다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자신의 지위와 역할에 있어 분수를 알고 행동했던 요한의 삶을 예수님은 높이 평가하고 계신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니라’ (29-30)
조금 유명해지고 약간의 권세만 주어져도 자신을 높이고 과장하며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교만해지는 오늘날 지도자들에게 세례 요한은 너무나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다.
자신의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야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작은 자들이다.
주님의 눈에는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 주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자,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분명히 깨닫고 수행하는 자가 큰 자이다.
내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 드러내려했던 교만을 철저히 회개한다.
나의 나됨을 바르게 알고 나를 들어 당신을 드러내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알며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로 다시금 결단한다.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판단함에 있어 가장 큰 기준은 성령이 함께하심이었다.
세례 요한은 세례를 베풀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는 것을 보았다.
또한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역사들이 성령을 통해 일어나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성령의 역사 앞에 철저히 자신을 내려놓은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3:34)
성령 충만함이란 성령의 뜻에 온전히 순종함이다. 성령을 따라 이해하고 성령을 따라 그 뜻에 순종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보다 앞서서는 안된다. 성령은 하나님의 아들을 증언하고 선포한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증언하는 사람이다.
나의 인생이 성령께 붙들린 삶이 분명하다면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증언하고 믿게 하는 삶이어야 한다.
세례 요한이 자기의 가르침을 앞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 했듯이
나 역시 오직 예수 그리스도 가르침과 뜻만을 증거하며 예수님을 믿어 영생에 이르게 하는 삶을 살아야할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잇고 어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36)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으로 인하여 기뻐하듯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신 교회의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 가득한 인생.
그 신랑을 위하여 기쁨으로 들러리를 설 수 있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제가 주님 곁에 서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은혜를 베푸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역사를 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을 섬기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보다 결코 앞서지 않으며 내게 역사하시는 성령께 사로잡혀 오직 주님을 선포하고 높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일평생 나의 지위와 역할을 알고 분수를 지키며 주님의 들러리로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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