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6일 / 물듦, 떨어짐, 그리고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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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1,367회 작성일 20-10-2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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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벌써 가는가 봅니다.

날이 갑자기 쌀쌀해졌네요.

아직 제주의 가을 억새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로 가는 길옆 단풍이 들어가는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함께 마음이 가을색으로 물들어갑니다.

가을은 물들어 떨어지는 나뭇잎과 함께 깊어가다 어느날 홀연히 떠나겠지요.

이토록 탄성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단풍은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몸부림이라고 하네요.

겨울을 나기 위해 잎으로 가는 물과 양분을 차단하게 되면서 엽록소 형성을 막아 그렇게 물들고 떨어내는 거라고 합니다.

떨어지는 순간까지 나뭇잎은 그렇게 아름다움을 선물합니다.

학창시절 빨간 단풍, 노란 은행잎들을 책갈피에 눌러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나무는 그렇게 아름답게 그 잎사귀를 떨구고 겨우내 생명을 지켜냅니다.

아름답게 물들고 떨어져 나무를 살리는 거지요.

단 한번도 떨어지기 싫은 버팀,

떨어짐에 대한 원망도 하지 않습니다.

'떨어져 살림'의 섭리에 순명합니다.

그것도 떨어지는 순간까지 가장 예쁜 색깔로 물들어 떨어짐을 선포하면서..

 

때로는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작은 것들을 버려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아름답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재물도, 권세도, 명예도, 인기도, 지위도, 욕망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걸 놓지 않으려 합니다.

떨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인생 나무는 병들어 죽거나 베임 당합니다.

떨어지는 나뭇잎은 다시 돋아날 새순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그리 아름답게 떨어집니다.

예수께서도 부활의 확신이 있으셨기에 십자가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온 인류의 용서를 구하시며 떨어지셨습니다.

그 떨어짐의 현실은 비참하셨으나 목적과 가치와 떨어짐의 모습은 너무도 거룩하였습니다.

 

아름답게 내려놓고 떨구면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는데 떨어지지 않고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내 자신을 바라봅니다.

이제는 정말 내 인생의 가을을 지나면서 진지하게 묵상해봅니다.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그것들을 어떻게 아름답게 내려놓아야 하는지.

어떤 건 빨갛게 물들어 떨궈야 하고 어떤 건 노랗게 물들어 떨궈야 하며 어떤 건 조화롭게 여러 빛깔로 물들어 떨궈야 합니다.

그렇게 내 인생 가을이 자신을 떨구고 모두를 살리신 예수님의 색깔로 물들어 가길 기도합니다.

그렇게 물들어 기쁨과 감동을 주고 누군가를 살려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을이 떠나기 전 사랑하는 아내와 가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억새 흔들리는 오름에도 오르고 싶고 가을 단풍 물들어가는 수목원 어느 숲길도 거닐고 싶습니다.

지난 33년간 둘이 함께 보냈던 가을 금년엔 그 자락을 붙들고 천천히 가라고 부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살림을 준비하는 그 찬란한 떨어짐에서 오늘도 인생을 배웁니다.

물듦, 떨어짐, 살림의 단풍이 짙어가는 이 가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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