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3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1,187회 작성일 18-03-28 16:26본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그들이 가장 먼저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은 바로 수치였습니다.
부끄러움이었지요. 이것은 전제적인 수치, 혹은 실존적인 수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벌거벗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적신이 되어 돌아갑니다.
그러한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상, 또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가운데는 바로 존재적인 수치가 있습니다. 부끄러움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그것들을 가리고 살아갑니다. 스스로 가리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나뭇잎으로 그것을 가렸듯이 인간들은 지금도 그것들을 가리려고 합니다.
인간이 가리려고 사용하는 나뭇잎은 돈이나 권력이나 인기나 지식이나 이런 것들로 그것들을 가리지요.
그렇지만 그것으로 가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찾으셔서 무엇보다 먼저 그들이 무엇을 잘못 하였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가 나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존재적인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의 삯이 무엇인지를 또한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려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내가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려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 앞에서 수치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그 가죽옷은 무언인가 희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짐승을 잡아죽이고 그리고 가죽옷으로 인간을 가려주셨습니다.
바로 그 가죽옷은 먼 훗날 우리의 죄를 가리기 위해 오셔서 자신을 희생하신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표하는 것이지요.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진정으로 가려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려주시기 위해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는 존재적인 수치심으로부터 자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그 많은 수치심과 열등감 낮은 자존감,
그것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유케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려주실 때 참으로 그들이 자유함을 경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가죽옷은 하나님이 손수 지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얘기는 그것은 우리 스스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가려주셔야 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가림을 얻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것 저것들로 우리를 가리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가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당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한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