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2일 / 슈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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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706회 작성일 22-12-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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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슈룹이라는 드라마가 종영을 했습니다.

'슈룹'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해서 외국어인줄 알았습니다.

사극에 어찌 외국어 제목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우산의 순 우리 옛말이랍니다.!

중전의 자리에 있는 어머니가 호시탐탐 세자의 자리를 노리고 중전을 끌어내리려는 궁궐 내 여러 세력들의 빗줄기를 막아내어 아들들을 지켜내는 우산 

곧 슈룹이 되어주는 이야기 내용입니다.

누군가의 우산이 되어 준다는 것은 쏟아지는 공격과 환난과 비난과 조롱을 대신 맞으며 지켜주는 것입니다.

남편으로, 아버지로, 목회자로, 책임을 맡은 단체의 리더로서 내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는 슈룹이 되어주었고 되어주고 있는가.

언젠가 아내와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걷고 있는데 문득 보니 내가 우산을 내쪽으로 많이 끌어와서 아내의 바깥쪽 어깨가 다 젖어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우산을 쓰는 법이 나를 가리는 것으로 습관화 된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을 가리는 슈룹의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내 식으로 가리고 나를 위해 가려오지는 안았는지..

비를 가려주는 것은 여러 방법이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려주려는 사람에게 참된 도움이 되고 고마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고통이나 부담이 되면 안 됩니다.

어떤 꼬마 아이가 자기가 우산을 쓰려 고집합니다.

아직은 작아서 우산을 제대로 쓸 줄 모릅니다.

그런데도 아빠는 아이가 그렇게 우산을 쓰도록 허락하고 지켜봅니다.

그리고는 그 아이 위를 아빠의 큰 우산으로 가만히 가려줍니다.

진정 아이를 배려한 슈룹입니다.

어느 때는 모든 비를 온 삶으로 막아주는 슈룹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어느 때는 같이 비를 맞으며 울어주는 슈룹이 되어 합니다.

슈룹은 비가 올 때를 위해 늘 준비되어야 합니다.

슈룹은 비 맞는 걸 싫어해서도 두려워 해서도 안 됩니다.

드라마의 끝부분 장면이 떠오릅니다.

연을 날리겠다고 높은 데 올라가 주위를 놀라게 하는 손주를 위해 달려가며 할머니가 된 중전은 소리칩니다.

'국모는 개뿔, 중전은 극한직업이다!'

온전한 슈룹의 삶은 극한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온 인류를 위한 슈룹이 되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슈룹의 극치였습니다.

인류를 향한 진노를 홀로 받아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누군가를 위한 슈룹을 펼치는 모든 분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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