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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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931회 작성일 19-04-12 15:40본문
행복한 하루가 또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게시는 성령 하나님과 오늘도 동행하며 행복하고 또 승리하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온전히 자유케 하셨음을 우리가 확신하는 것이지요.
참된 자유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자유하고 심판으로부터, 정죄로부터, 죄책감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이지요.
예수님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오해하면 그 자유가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욕망을 따라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잘못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가 아니지요. 이 자유는 방종의 의미가 아닙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함이라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그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육체의 욕망을 다스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 라고 말씀하면서 육체를 따라 행하지 말고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5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산다면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는 겁니다.
성령으로 행한다는 건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성령의 다스림을 따라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성령 충만이라고 말하지요.
우리 안에 계시는 인격적인 성령님께 내가 인격적으로 다가서고 가까이 하고 그리고 붙들고 인도함을 받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성령이 요구하시는 것에 반응하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믿음은 우리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라고 사도바울은 말하는데
그렇게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그런 길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고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을 거스린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소욕, 육체가 원하는바, 정욕이 원하는 바는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방탕함으로 유혹합니다. 잘못된 우상숭배로 유혹합니다. 서로에 대해 적대적인 그런 삶을 살도록 유혹합니다.
육체의 욕심,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며 살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일들이 반복되고 그것들이 지속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그 성령의 능력으로 육체의 소욕을 이기고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이 열매가 우리 안에 맺혀지는 것이지요.
성령의 소욕을 따라 육체의 소욕을 다스리고 성령의 열매를 우리 삶 가운데 맺음으로 온전히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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