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6일 / 은혜와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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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658회 작성일 22-05-1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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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상을 당하신 지인을 조문하기 위해 가면서 유한한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타인의 죽음이 더이상 내게서 멀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고인이 신앙을 가지신 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사시려고 무척 애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인간을 향해 외치신 설교의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 입니다.

회개는 용서를 전제로 합니다.

용서없는 회개는 무의미하고 회개없는 용서는 무가치합니다.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을 향해 외치신 회개의 메시지는 인간다운 삶의 첫 단추일 것입니다.

신 앞에서 살지 않는 인간의 삶 자체는 잘못된 것이며 신 앞에 서고자하는 인간은 죄인된 자신을 발견해야 하고 신 앞에서 죄인됨을 발견한 삶의태도가 회개입니다.

예수님이 회개를 촉구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용서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용납되는 유일한 길은 회개와 용서의 은혜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는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인간의 태도를 주장하는 가르침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면죄부를 파는 자들의 주장이 오히려 인간을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면죄부는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공덕을 내세움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의 구원을 충분이 이루고도 남을 만큼의 쌓아둔 덕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공(餘功, supererogation) 사상입니다.

여공(잉여공덕)이란 자기를 구원하고도 남는 공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여공이 하늘 창고에 보관되어 있어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면죄부를 살 때 그 여공으로 연옥에 갇힌 영혼을 구원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인본적 주장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은 회개가 아닌 더 많은 공덕을 쌓으라 외치셨을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공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는 공덕은 더더욱 없습니다.

인간은 죄를 짓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참된 회개만이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허락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도로 찾으시는 날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신앙은 죄를 용납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회개한 인간에게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에게 대신 죄를 물으신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참 회개는 단순히 입술과 마음으로 그치지 않고 삶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의 3조에서 '회개는 내적 회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회개가 외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육의 죽임을 산출하지 않는다면, 그런 내적 회개는 공허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외치신 회개는 공허한 마음속의 회개가 아닌 욕망을 통해 짓는 죄의 삶을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쌓을 수 있는 유일한 공덕이란 참된 회개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공덕을 믿는 것 뿐입니다.

 

이미 신의 은혜, 용서의 길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인간적 공덕의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의 황공한 은혜를 받아들이기 위해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도 내 자신을 죽이고자 애씁니다.

하지만 온전히 죽일 수 없기에 또 회개합니다.

하지만 이 회개의 결과는 용서의 은혜임을 확신합니다.

인생을 살면 살수록 내 자신의 공덕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은혜만이 필요함을 더 깊이 느낍니다.

간음한 여인을 향한 정죄의 돌을 제일 늦게까지 들었던 사람들은 나이 어린 자들이었습니다.

신 앞에서의 연약함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고 혈기와 자기의 의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는 신께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회개의 고백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은혜의 손길, 그 자비하심을 맛봅니다.

그렇게 천국이 내 안에 임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감히 하나님앞에 서있는 천국 백성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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